“네가 나를 사랑하거든 내 양을 돌보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 말씀에 응답하여 감히 이 땅의 목회자로 나선 우리는 조국의 분단 현실과 갈수록 난폭해져 가는 국제관계의 내일을 내다보며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새삼 고백한다. 이는 우리 자신의 내적 충실과 신앙적 결단을 오늘의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한국 역사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바, 기독교의 하나님을 곧 우주의 하나님이요 삼라만상 온 인류의 하나님이며 인간의 역사에 일일이 관계하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그분의 오롯한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평화와 사랑, 정의와 화해가 전쟁과 증오, 불의와 분열의 세계를 이기는 것이다. 하나인 세계가 조화된 일치를 이루며 생명의 창조를 무한히 계속하는 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본디 뜻이었으며 이를 위하여 마침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하여 분열과 다툼이 극에 달한 세상 한복판에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셨으니, 그분이 곧 우리가 구세주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는 길임을 믿는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고백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그분과 함께 길을 걷는 자만이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와 함께 먹고 일하고 괴로워하고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길 말고는 그의 생명을 함께 나누는 다른 길이 없다. 십자가의 길만이 오직 부활의 문에 닿는다. 이 세상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우리가 걸어야 하는 길은 여전히 십자가 수난의 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어 이 좁은 길은 마지막 빛나는 생명의 눈부신 영광을 우리에게 약속하신다. 우리는 바울처럼 오로지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여 그와 함께 죽는 것만이 우리가 품어야 할 진정한 소망임을 고백한다. 그것만이 진리와 생명과 참된 자유에 이르는 길임을 우리는 믿는다. 오늘날 우리가 동참하겠다는 그분의 고난은 그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 분단된 역사현실 한복판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살 수 없도록 하는 온갖 악마적 세력과의 투쟁으로 인한 고난을 뜻한다.
우리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믿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영인 성령은 우리를 그의 도구로 삼으시어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는 우리에게 선함과 약함을, 악과 불의를, 진실과 거짓을, 하나님의 뜻과 악마의 계교를 분별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선과 의와 진실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용감하게 일하도록 부르신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들은 우리 속에서 활동하시는 그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스르는 이 땅의 모든 불의와 거짓과 대항하여 싸운다. 그는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어 우리의 선한 싸움을 승리하게 하심을 믿는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백성들의 공동체임을 믿는다.
이 땅에 있는 교회가 저지른 많은 허물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성별 하시고 그 안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지 않는다. 죄악이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듯 하나님은 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삼으시었다. 이제 교회는 이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여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고, 모든 교회와 연합하여 이 세상을 위하여 일함으로 그리스도를 대신한 몸이 되어야 한다. 남녀와 인종과 계급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는 이 땅에 있는 하늘나라의 그림자임을 믿는다.
우리는 민족의 참된 통일이 하나님이 주신 지상과제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도덕 등 제반사에 있어 비인간적인 갈등과 모순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랄 수 있는 분단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타개할 대상이라고 믿는다. 국토의 분단과 민족의 분열은 악마가 이 반도에 가져다준 최악의 멍에로써 현존하는 온갖 악의 뿌리가 된다. 하나님은 반도 강산에 살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이 악의 뿌리인 분단 현실을 극복하고 참 민족적 통일과 화해를 이루는 일에 앞장설 것을 명령하신다.
우리는 이 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한 평화적 통일 아닌 그 어떤 통일도 참된 통일일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한민족의 자주적 역량에 의한 민주적이며 평화적인 통일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어떤 구실로라도 외국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간섭에 의한 이를테면 외세 의존적 통일을 모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민족이 동서의 냉전체제에 의하여 희생양으로서 분단 되었은 즉, 이제 그것을 민족주체의 능력으로 극복하여 참된 통일을 이룩함으로써 나아가 동서냉전체제의 악마적 정체와 그 무력함을 천하에 드러내고 마침내 세계가 서로 싸우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과제라고 믿는다.
우리는 평화와 연합이 교회의 사명임을 믿는다.
분열과 파장의 길에서 돌이켜 화해와 통일의 길로 가는 것이 그분의 뜻이라고 믿기에 우리는 지난날 사소한 이유로 형제를 비난하고 갈라서기를 거듭한 사실을 통회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도 한 분이요, 그리스도도 한 분이요, 성령도 한 분이심을 외면한 채 자신의 안락을 구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 아니듯, 농어촌의 가난한 형제 교회들을 외면한 채 자신의 교세 확장만을 추구하는 교회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교회는 못 된다고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 구원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코자 하신 것은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인간 자체다. 우리는 소위 영혼 구원의 강조가 일제말기에 한국 기독교의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억제하기 위하여 일부 선교사들이 주장한 교리적 상황에 영향 받은 바 있다는 사실이 오늘에도 극복되지 않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이 오히려 기독교의 정통적 신앙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일하고 있는 교회 현장과 교회가 위치해 있는 지역 사회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목회 대상자로 여겨 그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어진 인권과 자유와 기쁨 등 온갖 은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지적 고정관념과 종교적 독선으로 사람을 정리하고 단정하는 일을 거부하고 다양성 속에서 신비와 일체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지금 우리 민족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부과된 그분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선한 세력들과 연대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하는 데 노력할 따름이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1984년 9월
2003년 6월 4차 개정